“판타지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감정의 확장이다.” 요즘 제가 드라마를 보며 자주 느끼는 말입니다.
예전에는 판타지 장르를 단순히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요즘 나오는 작품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감정선은 훨씬 섬세하고, 세계관은 생각보다 현실과 닮아 있어서 오히려 몰입감이 큽니다. 특히 2024년 들어 제가 본 판타지 드라마들은 하나같이 세계관의 짜임새가 뛰어나고, 캐릭터의 감정도 생생해서 푹 빠질 수밖에 없었죠.
이번 글에서는 제가 실제로 인상 깊게 본 판타지 드라마들을 중심으로, 그 세계관이 왜 설득력 있고 흡입력 있게 느껴졌는지 경험담을 곁들여 정리해보겠습니다.
정교한 세계관이 몰입도를 결정한다
작년 이맘때쯤, 주말에 시간 좀 내서 보기 시작한 ‘눈물의 여왕’. 첫 인상은 그냥 평범한 멜로드라마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회차가 진행될수록 그 안에 깔린 세계관이 단순히 감정선을 부각시키는 장치가 아니라, 드라마 전체를 이끌어가는 구조라는 걸 느꼈죠. 예를 들어 주인공이 처한 상황, 가족 구조, 기업의 이면 같은 요소들이 실제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듯하면서도 어디선가 본 듯한 현실감이 있어요. 그 균형이 정말 좋았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봤던 ‘딜리버리맨’도 의외의 수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귀신 태우는 택시’라는 콘셉트에 가볍게 접근했는데, 회차가 쌓이면서 인물의 사연과 세계관이 차곡차곡 쌓이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어느 날 밤 3시에 마지막 회를 보는데, 엔딩 자막이 뜰 때까지 리모컨을 들지 못했습니다. 귀신의 사연 하나하나가 정말 세심하게 짜여 있어서, 가볍지 않은 주제들을 판타지라는 옷을 입고 조심스럽게 풀어낸다는 느낌이었죠.
저는 판타지 드라마가 좋다고 느낄 때는 꼭 이런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비현실적인 설정인데도, 그 안의 논리가 아주 치밀해서 ‘이럴 수도 있겠는데?’ 싶은 설득력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런 작품을 만나면 단순히 재미를 넘어서, ‘이 드라마 세계에 들어가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상과 맞닿은 판타지가 주는 공감
처음 ‘나에게만 보이는 너’를 봤을 때, 사실 큰 기대는 없었어요. 유령이 주인공이라니, 너무 전형적이고 식상한 설정 아닌가 싶었죠. 그런데 막상 보기 시작하니 전혀 달랐어요. 제가 그 작품에 완전히 빠져든 이유는, 그 유령이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지나간 감정의 상징’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한 장면에서는 여주인공이 유령에게 이렇게 말해요. “그때 조금만 더 용기 냈다면, 널 붙잡았을까?” 저는 이 장면을 보고 정말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어요. 예전에 끝난 연애에서, 비슷한 생각을 수도 없이 했거든요.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후회와 미련 같은 감정을 판타지로 표현한 ‘감정의 도서관’ 같았습니다.
또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오늘도 사랑스럽개’는 설정만 보면 웃기기도 하고 유치한 느낌도 있잖아요? 사람이 개로 변한다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안의 감정선은 꽤 진지합니다. 특히 주인공이 저주를 안고 살아가는 이유와, 그걸 받아들이는 상대방의 태도가 어쩐지 진심처럼 느껴졌어요.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말 못할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걸 은유적으로 풀어낸 느낌이랄까요.
확장 가능한 세계관, 그리고 계속 보고 싶은 이유
제가 ‘환혼’을 처음 보기 시작한 건 사실 주변의 추천 때문이었어요. 초반엔 그 세계관이 복잡하고 용어도 낯설어서 ‘이거 집중해서 봐야겠는데’ 싶더라고요. 그런데 몇 회만 지나면 금세 익숙해지고, 어느새 세계관 안에 푹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돼요.
이 드라마가 흥미로웠던 건, 시즌2까지 이어지며 세계관을 더욱 넓혀갔다는 점이에요.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구성과, 각 인물의 성장 서사,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문화적 설정까지… 저는 드라마를 보면서 ‘이건 진짜 작가가 대본 쓰기 전에 전체 지도부터 그렸구나’ 싶을 정도였어요. 그래서인지 종영 이후에도 ‘후속작이 나오면 어떨까’, ‘이 인물의 과거도 스핀오프로 보고 싶다’는 상상이 저절로 되더라고요.
제가 개인적으로 판타지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확장성’이에요. 하나의 이야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세계 안에서 계속해서 무언가가 자랄 수 있다는 가능성. 그런 세계를 설계한 드라마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시간이 지나도 다시 꺼내 보게 됩니다.
‘환혼’ 이후로, 저는 드라마를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서 ‘경험하는 것’처럼 여기게 되었어요. 그만큼 세계관이 잘 짜인 판타지는 현실보다 더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는 법이죠.
2024년의 판타지 드라마는 더 이상 단순히 비현실적인 상상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보다 더 섬세한 감정과 구조로 설계된 세계 안에서, 우리가 쉽게 말하지 못했던 감정이나 고민을 마주하게 해주죠.
저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 봤던 그 장면’을 떠올리며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집니다. 요즘 뜨는 판타지물은 그런 힘이 있어요. 만약 지금, 조금은 다른 감정과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면, 지금 소개한 드라마 중 하나를 골라보세요. 분명히, 현실에서 놓치고 있던 무언가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