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저녁 식탁에서 밥을 먹고 나면 엄마와 함께 TV 앞에 앉아 드라마를 보던 기억이 납니다. 그 시절엔 내용보다 엄마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는 사실이 더 소중했죠. 시간이 지나고 각자의 삶에 바빠지면서, 엄마와 나란히 앉아 드라마 한 편 보는 일조차 점점 줄어들었지만, 최근 다시 엄마와 함께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서 서로에 대해 더 많이 공감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드라마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세대 간 감정의 틈을 메우고 이해와 대화의 물꼬를 터주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엄마와 함께 보기 좋은 실제 방영 드라마 3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실제 경험담을 곁들여 공감 포인트까지 안내드리니, 어떤 드라마부터 함께 보실지 고민 없이 고르실 수 있을 거예요.
1. 고백부부 (KBS2, 2017)
‘고백부부’는 결혼 후 후회와 갈등 속에 이혼을 선택한 부부가 어느 날 20살로 돌아가 청춘 시절을 다시 살게 되며, 과거의 선택과 가족의 의미를 다시 되짚는 따뜻한 판타지 드라마입니다.
처음 이 드라마를 엄마와 보기 시작했을 땐, “저런 게 말이 돼?” 하시며 웃으셨던 엄마가, 몇 화가 지나자 “내가 저 엄마 마음 알아. 딸이 힘든데 표현도 못 하고 얼마나 마음이 찢어졌을까”라고 하시며 주인공 엄마(이정은)의 감정에 이입하시더라고요.
특히 극 중에서 진주(장나라 분)가 현재 시점으로 돌아가기 전, 엄마가 만들어준 밥상을 보며 눈물짓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걸 본 저도 순간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그 장면이 끝나고 나서 엄마는 “엄마들도 가끔 말 못하고 속으로만 울어”라는 말을 꺼내셨어요.
‘고백부부’는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닙니다. 엄마 세대의 청춘, 딸로서의 삶,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드라마입니다. 드라마를 보며 자연스럽게 과거 이야기를 꺼내는 계기가 되었고, 그 시간이 저에게는 어떤 긴 대화보다 더 의미 있었던 것 같아요.
2. 나쁜 엄마 (JTBC, 2023)
‘나쁜 엄마’는 모든 걸 자식의 성공에 걸고 냉정하고 엄격하게 키울 수밖에 없었던 엄마와, 그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품고 성장한 아들이 기억을 잃고 아이가 된 후 다시 관계를 회복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엄마와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을 땐, 엄마는 “저 엄마 너무 무서워 보인다”고 하셨지만, 점차 회를 거듭하면서 “그렇게라도 해야 자식이 살아남으니까...”라는 말로 바뀌었어요.
특히 기억을 잃은 아들이 아이처럼 말하고 행동할 때 그를 씻기고, 밥을 먹이고, 다시 걷는 법을 가르치는 장면들에서 엄마는 한참을 말없이 화면을 바라보셨고, 드라마가 끝난 후 “넌 어릴 때도 아프면 말 안 했지”라며 조심스레 옛날 이야기를 꺼내셨어요.
그때 처음 들은 얘기가 있어요. 어릴 적 독감에 걸려 숨을 헐떡이며 잠든 저를 보며 엄마는 밤새 이불을 덮었다 걷었다 하며 감기약 시간을 기다리셨다고요. 그 말을 듣고, 드라마보다 더 큰 울림을 느꼈습니다.
‘나쁜 엄마’는 자식을 위해 미워하는 역할까지 감수하는 엄마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그림처럼 절절하게 그려낸 드라마입니다. 자주 표현하지 않아도, 항상 곁에 있던 그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깨닫게 되는 작품이죠.
3. 오 마이 금비 (KBS2, 2016)
‘오 마이 금비’는 10살밖에 되지 않은 소녀 금비가 치매 판정을 받고, 하루하루 기억을 잃어가며 세상과 사람들을 배워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곁을 지키는 아빠의 서툰 사랑 역시 큰 감동을 줍니다.
이 드라마는 보기 시작한 첫 화부터 엄마의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엄마는 “금비를 보면 어린 네 모습 같아”라며 그동안 묵혀두셨던 감정이 북받쳐 오르시는 듯했죠.
극 중 금비가 “아빠, 나 기억 안 나면 어떡해?”라고 말할 때, 엄마는 “엄마도 너 안 보면 불안했어. 네가 감기만 걸려도 잠 못 잤어”라며 조용히 말씀하시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 드라마는 아이의 순수한 시선으로 가족, 삶, 기억, 사랑을 하나씩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그리고 그걸 엄마와 함께 본다는 건, 지금까지 들은 적 없던 엄마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죠.
오 마이 금비는 가슴 저리고 눈물 나지만, 그만큼 따뜻하고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엄마와 손을 꼭 잡고 보면, 어느새 마음까지 더 가까워지는 걸 느끼게 되실 거예요.
‘고백부부’는 청춘과 가족에 대한 아련한 회상을,
‘나쁜 엄마’는 헌신과 오해를 거쳐 완성되는 모성애를,
‘오 마이 금비’는 순수한 사랑과 생의 소중함을 진심으로 그려냅니다.
드라마는 말 못 한 감정을 꺼낼 수 있는 도구이자 세대 간의 다리를 놓는 소중한 매개체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주제로도 대화가 어려웠다면, 엄마와 함께 드라마 한 편부터 시작해보세요.
진심이 오가고 눈물이 닦이고, 잊고 있던 기억이 꺼내지는 그 순간들이 당신에게도, 엄마에게도 오래도록 따뜻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