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드라마를 같이 본다”는 말, 어쩌면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각자의 취향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요즘, 같은 시간에 같은 화면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눈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요. 하지만 실제로 저는 몇 편의 드라마를 계기로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새로운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고, 그 시간을 통해 부모 자식 사이의 거리감이 조금씩 좁혀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오늘은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함께 보기에 부담 없고, 이야기 나눌 거리가 많은 드라마 3편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공통점은 모두 ‘아버지 세대가 흥미를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갖고 있다는 것. 액션, 사회 정의, 인생 회고 등 다양한 정서와 메시지가 담긴 이 작품들로 여러분도 아버지와의 특별한 하루를 만들어 보시길 바랍니다.
1. 모범택시 (SBS, 2021~2023)
‘모범택시’는 억울한 피해자 대신 복수를 해주는 ‘다크 히어로’ 조직의 이야기입니다. 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현실의 불합리함을 대신 응징한다는 점에서 시청자에게 통쾌함과 대리 만족을 안겨주는 드라마죠.
저는 이 드라마를 평소 드라마에 큰 관심 없으셨던 아버지와 함께 보게 되었는데요, 초반에는 “드라마가 너무 현실성 없다” 하시던 분이 어느 순간부터 “오늘은 누구 편이냐?”, “저 악역은 지난 회보다 더 나쁘다” 하며 몰입하시더라고요.
특히 사회적 약자, 노인 학대, 학교 폭력 등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을 소재로 삼은 점이 아버지의 관심을 끌었던 것 같습니다. “저런 건 뉴스로만 보면 분한데, 드라마라도 속 시원하게 풀어줘서 좋다”는 아버지 말씀처럼, 이 작품은 중년 이상의 시청자에게도 큰 울림을 주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피소드마다 다른 피해자 사연이 등장하니 길게 보지 못해도 중간 진입이 쉽고, 무겁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전개라 아버지와 함께 보며 감정을 공유하기에 부담이 없습니다.
2. 모래에도 꽃이 핀다 (KBS2, 2024)
가족, 중년, 인생이라는 키워드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따뜻한 드라마 ‘모래에도 꽃이 핀다’. 이 작품은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가는 평범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회한, 용서, 관계 회복 같은 주제를 차분하게 그려냅니다.
이 드라마를 아버지와 함께 보기 시작한 건 우연이었어요. TV를 트는 시간대에 마침 방영 중이라 같이 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아버지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대사 하나하나가 괜히 와닿는다”는 말씀이 인상 깊었어요.
극 중 아버지 역할을 맡은 인물이 자식을 이해하지 못해 갈등을 겪다가, 작은 사건을 계기로 조금씩 다가가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장면을 보며 아버지가 “나도 저랬던 적 있었지”라며 웃으시더군요.
드라마가 꼭 대단한 전개가 없어도 마음을 건드릴 수 있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현실적인 이야기, 잔잔하지만 깊은 감정선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중년 세대가 쉽게 몰입할 수 있고, 함께 보며 ‘우리 가족도 저랬나?’ 하고 돌아보게 해줍니다.
3. 악인전기 (TVING, 2024)
선과 악의 경계에 선 인물의 심리를 깊이 파고드는 느와르 드라마, ‘악인전기’. 이 작품은 경찰 신분이지만 조직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은 주인공이 자신의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이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긴장감이 높고, 다소 어두운 분위기를 갖고 있지만 그만큼 몰입감, 속도감, 이야기의 밀도가 뛰어납니다. 저는 아버지와 주말에 2화 연속 시청했는데, 1화 끝나자마자 “다음 거 바로 보자” 하실 정도로 강한 흡입력을 보여줬어요.
특히 아버지는 젊은 시절 영화 ‘무간도’, ‘범죄와의 전쟁’ 같은 장르를 좋아하셨기 때문에 이런 스타일의 드라마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이 높았습니다. “요즘 드라마는 이런 것도 하네”라며 놀라워하시기도 했죠.
물론 폭력적인 장면이 일부 포함되어 있지만, 그보다는 현대 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사람은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가 같은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라 감상 후 대화를 나누기에도 적합했습니다.
‘모범택시’는 속 시원한 정의 실현을,
‘모래에도 꽃이 핀다’는 가족 간의 회복과 진심을,
‘악인전기’는 윤리와 생존 사이의 갈등을 통해 인간 본성을 이야기합니다.
아버지와 드라마를 같이 본다는 건, 단순한 시청을 넘어 대화의 시작이자 감정의 다리가 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같은 장면에서 같이 웃고,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 없이도 서로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하죠.
이번 주말,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리모컨을 들고 첫 화부터 시작해보세요. 어쩌면 그 한 편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릅니다.